버릇 (김태영)
버릇 (김태영)
  • 관리자
  • 승인 2008.02.28 1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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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집으로 이사 온지 근 한 달이 되어간다. 먼저 살던 집과 근동이라 특별히 낯선 동네는 아니나 까닭 없이 낯설게만 느껴진다. 먹이사냥을 나갔던 날짐승이 제 둥지로 날아들 듯 옛집이 그립다.

베란다에서 살짝 고개를 틀어 바라보면 빤히 보이는 동네. 그런 까닭에 고향은 세월이 흘러가도 기억에 남아 영영 그리움으로 자리 잡는 모양이다. 겨우 10여년 정착했던 집이었다. 그럼에도 차마 마음을 떼어내지 못하고 오가며 서성대고 있다. 그깟 정이 무엇인지. 정붙여 살던 옛집근처를 잃은 물건 찾듯 기웃거린다.

세월의 흔적이 짙게 남아있는 떠나온 집처럼 이곳도 구석구석 매만지다보면 잔정이 생겨날까. 차츰 그렇게 될 것이다. 그리하여 왠지 낯선 새 집에 대한 거부감을 떨치고, 스스럼없이 맘껏 드나들 날이 올 것이다.

여태 지녔던 살림살이건만 집안에 들어서면 어쩐지 낯설기만 하다. 새 집의 구조가 살던 곳과 달라 가제도구들을 달리 배치했다. 벽시계 또한 주방 쪽에 내걸었다. 잠에서 깨어날 때마다 벽시계를 찾느라 허둥댄다. 쉽사리 찾아내지 못하고 사방의 벽면을 둘러보는 헛수고의 연속이다. 아, 그렇지. 고장 난 라디오를 손바닥으로 탁 쳤을 때 울리는 소리처럼 생각이 돌아온다. 이 집에 정착한지 근 한 달이 되어가건만 여태 그 모양이다. 낯설다는 건 새롭다는 것임에도 불편하기 짝이 없다. 그깟 벽시계 하나도 나를 조롱하듯 매일처럼 심술을 부린다.

속옷이라도 갈아입으려들면 갈팡질팡 방안을 뒤집어엎는다. 늘 있던 자리가 바뀐 탓이다. 장롱서랍 몇 개를 여닫는 난리를 치고 나서야 겨우 목적을 달성하는 해프닝을 연출한다. 환경이 바뀌었다. 몸도 마음도 바뀐 환경 따라 뒤엎어지면 좋으련만 금세 뒤쫓지 못하니 누가 알까 두렵다. 카멜레온. 바뀐 환경에 맞춰 감쪽같이 몸 색깔을 바꾸는 변색의 달인인 카멜레온이 부럽다.

새 것에 적응하기 위해 별짓을 다해보지만 굳어버린 머리가 거부반응을 일으킨다. 그렇다고 포기하거나 기죽기에는 이르지 싶다. 삶이 지속되는 한 내가 해결해야할 일이다. 언젠가 이곳의 질서도 삶에 녹아들어 요모조모 살피는 안락함을 맛보게 되지 싶다.

지하주차장은 내 오기를 시험하는 실험실이다. 새 집에 대한 적응도가 늦어 그렇잖아도 스트레스 받고 있는데 주차장마저 고약한 성질을 테스트하려든다. 주차공간을 어찌나 좁게 만들어놨는지 백미러가 옆 차와 가까스로 비껴갈 정도로 고난도의 운전기술을 요구한다. 운전경력으로 치면 그깟 게 대수일 수는 없다. 문제는 동별로 막혀있는 시멘트벽이다. 어렵사리 주차를 하고 엘리베이터를 탔는데 엉뚱한 홋수와 맞닥뜨려 난감해 하는 모습이람. 누가 카메라를 들이대고 이 황당해하는 묘한 표정을 찍어댄다면. 아유, 심장 떨려. 심정 같아선 이유 불문하고 달려들어 부숴놓고 싶어진다. 어리부리 헤매다 겨우 찾아낸 엘리베이터에 대고 엄한 화풀이를 해대기 일쑤다. 이 또한 길들여진 버릇에 얽매어서 헤어나지 못하는 증표다.

이쯤이면 몸에 익은 버릇은 고약스런 고질병이다. 찰거머리처럼 찰싹 달라붙어 몸에서 떨어져나가지 않는 치졸한 독종이 버릇이다. 한 번 몸에 밴 버릇은 쉽사리 떨쳐버릴 수가 없다. 내 비록 재벌끄나풀이 되고자 새 집으로 이사한 건 아니지만 호되게 홍역을 앓고 있는 기분이다. 그냥 옛집에서 그럭저럭 살 걸 그랬나하는 후회가 밀물처럼 쏴아 몰려든다. 이사한지 그럭저럭 근 한 달이란 시간이 흘렀다. 새 환경에 맞춰보려는 의지는 팔팔한데 아직도 곳곳에서 시행착오를 겪고 있다. 치수 맞지 않는 옷을 몸에 걸친 것처럼 마음이 께적지근하다.

내 이런 심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아내는 행복한 표정을 짓고 있다. 베란다를 통해 들어온 투명한 햇살이 종일 거실에서 머무는 행복을 아느냐고 묻는다. 생뚱맞기는. 무슨 뜻인지 몰라 멀뚱거리며 아내의 얼굴을 한참동안 바라다보았다. 새 집에 대한 만족감인지 생기가 돈다. 그리고 행복해 보였다.

몸에 밴 버릇을 떨쳐내지 못하고 사사건건 허둥대고 있는 나를 보며 숨어서 슬금슬금 즐기고 있었던 건 아닐까. 아무려면 어떠랴. 내 비록 지금은 새로운 버릇을 익히느라 갈팡질팡하고 있지만 곧 익숙해지리라 믿는다. 아내의 물음을 곰곰이 따져보니 비로소 답을 알 것만 같다. 옛집에서의 낡은 버릇을 버리라는, 해답은 의외로 쉬었다.

김태영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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