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날 (김태영)
첫날 (김태영)
  • 관리자
  • 승인 2008.02.28 1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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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막 새날이 시작되었다. 멀리 수평선너머에서 새롭게 해가 솟아오를 때처럼 가슴이 두근거려진다. 이는 뜀박질을 시작하려는 출발선에서의 첫걸음이다. 이는 링 위에 오른 권투선수의 첫 번째 주먹질이다. 이는 모친의 뱃속에서 탯줄을 단 채 태어난 갓난쟁이의 우렁찬 첫울음이다.

새벽을 알리는 수탉의 첫소리며 먹이사냥을 시작한 날짐승의 새벽 지저귐이기도 하다. 어제의 연속이기도한 새날은 마음먹기에 따라 어제와는 확연히 다른 꿈을 지닌 날이다. 희망이 담겨있다. 출발을 말하기도 한다. 수평선너머 떠오르는 해처럼 맑고 깨끗하다.

동해 간절 곶이나 호미 곶에서 새해를 여는 새아침을 맞으면 좋겠다. 하지만 여건이 허락하지를 않는다. 아쉽지만 집근처 야산에서라도 해가 솟기 전 일찍 일어나 동녘의 불꽃을 보아야겠다. 이처럼 새해벽두부터 소란을 떠는 까닭은 첫날이기 때문이다. 못다 이룬 묵은해의 소망을 실망으로 날려버릴 것이 아니라 연이어 이루기 위한 주술적인 행위이기도 하다. 첫 번째라는 건 가슴 두근거리게 하는 신비함이다. 경험해보지 못한 미지의 세계가 첫날이다.

바쁘다는 핑계로 챙기지 못했던 지인들에게 첫날에는 안부를 묻는다. 저 홀로 잘나 세상살이를 하는 게 아니다. 밀어주고 이끌어주기 때문에 그럭저럭 탈 없이 살고 있음을 망각할 때가 있다. 이 망각을 털어내고 고마움을 일깨우는 행위를 첫날부터 시작해야한다. 실천이 미덕이다. 마음에 담아두고 있어보아야 통하지 않는다. 상통相通의 시작은 미뤄서는 안 된다. 나부터 마음을 여는 실천을 행할 때 세상은 밝아지고 맑아지며 환희로 넘쳐날 것이다. 다른 일 다 미루어두더라도 지인들 마음을 닦는 이 일을 첫날에는 반드시 이뤄야만 하겠다.

첫날엔 꿈을 가져야한다. 앞이 불투명할수록 반드시 꿈을 간직해야한다. 우타가와 도요쿠니라는 일본인은 96세에 대학생이 되었다. 가난으로 학업을 잇지 못했던 그는 대학생이 되는 꿈을 평생 동안 가슴에 지니고 살아왔다. 언제 죽을지 모를 나이인 96세에 이르러서야 그 꿈을 성취하였다. 이를 축하하는 자식들 앞에서 당당했지만 흐르는 눈물을 막을 수는 없었다.

우스갯소리겠지만 이 눈물을 연구해 논문으로 쓰겠다하여 자식들이 숙연해졌다한다. 확실한 목표를 지닌 꿈은 반드시 성취하게 마련이다. 첫날은 꿈을 설계하기에 매우 적절한 날이다. 꿈을 가진다는 건 희망을 가진다는 것과 같다. 이 얼마나 가슴 풋풋해지는 단아한 목표인가. 비록 올해 다 이루지 못한다하여 좌절하지 말고 꿋꿋하게 실천할 꿈을 가져야한다.

첫날엔 게을러지고 나태해진 버릇을 고치기에 딱 알맞은 날이다. 여명의 아침에 솟아오르는 해를 바라보며 스스로를 질책하고 올곧은 길로 나가길 소망한다. 때로는 비겁하게 꽁무니 쳤던 날을 반성하는 계기로 삼는다. 옳은 것을 옳은 것이라 말하지 못하고, 그른 것을 그르다 말하지 못했던 적당한 타협에 안주했던 날들을 반성하는 날이다. 쓸데없는 고집을 피워 시행착오를 자행했던 과오를 털어내어 마음을 비우는 날이다. 마음을 비워내면 비워낼수록 채울 공간은 넓어진다. 첫날엔 그 빈자리를 무엇으로 채울 가를 생각하는 날이기도 하다. 삶을 풍요롭게 하려면 허튼 잡동사니는 걷어내고 알이 꽉 찬 생각으로 가슴을 채워야한다.

다시 한 바퀴 돌아와 새롭게 첫날을 맞이할 때를 생각해본다. 오늘아침에 다짐했던 일들이 얼마나 이행되었을까. 정말 꿈대로 잘 살았다고 말할 수 있을까. 오늘아침의 다짐이 그만 허망한 꿈으로 끝나버리지는 않았을까. 이런 후회를 하지 않게 되길 열망하며 첫날을 충실하게 맞고 싶다. 살다보면 뜻하지도 않게 좌절이란 쓴맛을 볼 때도 있다. 이에 굴하지 않고 오뚝이처럼 발딱발딱 일어서는 용기를 불어넣는다. 삶에도 빛깔이 있기 마련이다. 무지갯빛 꿈을 가슴에 지닌다면 삶도 무지갯빛으로 영롱해지지 않을까싶다. 첫날엔 무뎌진 칼날을 날카롭게 갈아 마음에 지니는 날이다. 언제 어느 때든 빼어들어 험로를 뚫어야하기 때문이다.

젊은 날의 새해소망이란 너무 높고, 너무 멀어서 손에 넣을 수 없는 일확천금과도 같았다. 그 아무리 빛나고 반짝이는 소망이었을지라도 지나고 나면 공허해지는 그런 것들이었다. 이제 귀밑머리가 희끗해지니 새날의 소망도 소박해진다. 가정의 안위와 건강이나 갈구하고, 주변을 정리하는 일 따위가 고작 새 희망이다. 혹여, 어느 날 갑자기 세상을 하직하더라도 남들로부터 소인배로 기억하지 않게 맑고 밝게 살기를 갈망한다. 젊은 날처럼 되도 않을 허공에 뜬 소망이 아닌 실천하기 쉬운 소망을 가슴깊이에 고이고이 간직하며 첫날을 맞는다.

법정스님의 「날마다 새날을」에 나오는 문구 하나를 인용한다. ‘사람이 만약 1백년, 2백 년을 산다고 해서 좋을 게 뭔가. 그렇게 되면 사람이 얼마나 추하고 천해질 것인가. 수목은 오래될수록 늠름하고 기품이 있지만, 사람은 살 만큼 살면 헌 수레와 같이 삐꺽삐꺽 고장이 많고, 주책을 떨다가 추해지기 마련이다.’ 2008년 한해를 어떻게 살 것인가를 말하고 있다.

김태영 수필가

월간환경21 2월호 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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