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풍 대응체계 너무 허술하다(913호)
태풍 대응체계 너무 허술하다(913호)
  • 관리자
  • 승인 2010.09.28 17: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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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진국형 '안전 불감증'..정부는 도대체 뭐하나

뒤늦은 등교연기.."난 몰랐는데" 학생 등교대란
선진국 "안전 최고"..태풍 예상되면 일단 휴교령

"출근길 자동차에서 두 번이나 내려 쓰러진 가로수를 치우며 운전했습니다. 떨어지는 간판에 맞아 목숨을 잃을 수도 있다는 생각에 정말 겁이 났습니다"
서울 서초구 잠원동에 사는 회사원 권모(47)씨는 제7호 태풍 '곤파스'가 강타한 2일 오전 6시30분 출근길에 나서면서 태풍이라는 자연재해 그 자체보다는 정부의 안이한 대응에 화가 치밀었다.
권씨는 "강풍과 함께 아파트 유리창 밖 정원수가 쓰러지는 굉음 소리에 아침잠을 깼다"면서 "베란다로 나가보니 아파트 조경용 나무들이 곳곳에 쓰러진 것을 보고 곧바로 TV를 켰다"고 말했다.
그는 "출근을 자제하라는 정부 발표가 없는 것을 보고 자동차를 몰고 출근길에 올랐다가 혼이 났다"면서 "특히 잠원동 신동초등학교 인근 도로를 달리던 택시가 가로수에 깔리는 사고를 목격하자 등에 식은땀이 흘렀다"고 말했다.

◇ 태풍 속 '출근대란'..후진국형 현상


태풍 속 출근길에 위험을 느낀 것은 다른 직장인들도 마찬가지였다.
경기도 일산에 사는 회사원 정모(51)씨는 "아침에 집에서 나와 지하철역으로 가는 길에 갑자기 하늘에서 각목이 날아와 바로 앞에 떨어졌다"면서 "재수가 없었으면 죽을 수도 있었다는 생각을 하면 지금도 아찔하다"고 말했다.
서울 마포구 합정동에 사는 회사원 이모(33.여)씨도 "출근길에 바람이 너무 불어 제대로 걸을 수가 없었다"며 "특히 공사장에 있던 크레인이 바닥에 고꾸라져 구겨진 모습을 보니 나도 혹시 사고를 당할까 섬뜩했다"며 몸서리를 쳤다.
실제로 서울에서는 다친 시민들이 속출해 아침부터 병원 응급실이 환자들로 붐볐으며 경기 성남시 주민 현모(37)씨는 무너지는 가로수에, 충남 서산 주민 양모(80)씨는 날아온 기왓장에 머리를 맞아 숨졌다.
선진국에서는 태풍이 상륙하면 기업체들에 대해 직원들 출근을 늦추거나 아예 출근을 하지 못하도록 유도하며 출근한 이후 태풍 상륙이 임박할 경우에도 퇴근령을 내린다.
시민들은 "정부의 기본 임무는 국민의 안전을 보호하고 생명을 지켜주는 것"이라며 "미리 예상된 자연재해에 아무런 대책도 내놓지 못하고 시민들이 목숨 걸고 출근하게 만드는 정부의 안전 불감증에 한숨만 나온다"고 목소리를 모았다.

제7호 태풍 '곤파스'가 2일 오전 강화 지역에 상륙, 수도권 등 중부지방을 중심으로 많은 비가 내리고 강한 바람이 부는 가운데 서울 북악스카이웨이 길에서 차량들이 쓰러진 나무 옆을 지나고 있다
제7호 태풍 '곤파스'가 2일 오전 강화 지역에 상륙, 수도권 등 중부지방을 중심으로 많은 비가 내리고 강한 바람이 부는 가운데 서울 북악스카이웨이 길에서 차량들이 쓰러진 나무 옆을 지나고 있다

◇ 학부모들 대혼란..언론사에 문의전화 빗발쳐


"밖에서는 창문 깨지는 소리가 들리고 간판이 떨어져 나뒹굴고 있는데 애들을 학교에 보내야 하는 겁니까?"
서울 강남구에 사는 학부모 백모(39)씨는 "태풍 소리에 잠도 제대로 자지 못했는데 아침 7시께 TV에서 등교를 2시간 연기한다는 간단한 자막만 나오고 학교에서는 아무런 연락도 없어 정말 답답했다"고 말했다.
백씨는 "외국에 살 때는 중소형 태풍에도 모든 학교들이 휴교령을 내리고 담임교사들은 일일이 학부모에게 안내전화를 한다"면서 "이 정도 태풍이면 휴교령을 내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서울 송파구에 사는 학부모 심모(40.여)씨는 세 자녀의 등교시간을 10여분 앞두고 태풍 때문에 초등학교 등교가 2시간 연기됐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4학년 딸의 담임교사는 오전 8시에, 1학년 아들의 담임교사는 8시10분에 각각 휴대전화 문자 메시지를 보내 "10시40분까지 등교하세요"라고 알려왔다.
자녀들이 보통 집을 나서는 시간은 오전 8시15분.
문자가 5분만 늦게 도착했어도 어린 애들을 태풍 속으로 내보냈어야 할 판이었다.
심씨는 "바람 소리가 너무 심한데다 강풍에 꺾인 나뭇가지가 도로에 널려 있어 등교시키기가 겁났다"며 "왜 이런 중요한 조치를 미리 알려주지 않는지 모르겠다"며 불만을 토로했다.
일부 학교는 등교 연기 조치를 학부모에게 알려주지도 않았다.
서초구에 사는 김모(45.여)씨는 "중학생 딸이 다니는 학교에서는 등교 연기 조치가 내려졌다는 전화는 물론 문자 메시지도 보내지 않았다"며 "학부모가 알아서 하란 얘긴지 뭔지 정말 무책임하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또 다른 학부모 최모(36.여)씨도 "TV에서 초등학교는 2시간 등교가 미뤄졌다고 방송하는데 학교에서는 아무런 연락이 없어 담임에게 전화했더니 그제야 문자를 돌리더라"고 말했다.
이날 새벽 등굣길 사고가 우려되자 라디오 방송국과 언론사에는 "휴업을 하는지 알아봐 달라"는 학생과 학부모들의 문의 전화가 빗발쳤다.
오전 7시께 결정된 등교 연기 조치가 전달되지 않거나 늦게 전달되는 바람에 서울 시내 초.중학교에서는 정규 수업 이전에 시행되는 '방과 전 수업'에 학생들이 그대로 출석하는 등 혼란이 컸다.

◇ 선진국들, 휴교나 휴업 다반사


이 때문에 태풍 곤파스가 인구가 집중된 수도권을 통과할 것을 알면서도 당국이 등교와 출근에 대해 너무 안이하게 대처했다는 비난 여론이 들끓고 있다.
특히 해외 거주 경험이 있는 사람들은 한국의 안전 불감증을 강하게 비판했다.
홍콩에서 3년간 살았던 권씨는 "홍콩에서는 태풍이 온다는 기상예보만으로도 모든 학교에 휴교령이 내려지고 교사는 이를 일일이 학부모에게 알려준다"며 "우리처럼 태풍 당일에 대혼선을 빚는 경우는 없다"고 말했다.
그는 "직장도 마찬가지로 출근 연기나 휴업을 해 당시에는 지나치게 안전 위주라고 생각했지만 그게 올바른 것 같다"며 "정부는 자연재해 위기가 닥치면 출근을 자제하도록 권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미국 노스캐롤라이나에서 거주했던 공모(40)씨도 "미국에서도 눈비가 많이 오거나 허리케인 위험이 있으면 시민의 안전을 위해 학교와 직장이 종종 휴업을 한다"며 "TV는 전날부터 개별 초.중.고등학교와 대학의 휴업 여부, 등교 시간 등 구체적인 정보를 제공한다"고 설명했다.
한남호 한국재난안전네트워크 사무총장은 "우리나라 방재 당국도 시민 안전이 최우선이라는 생각으로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며 "1명의 피해자도 발생하지 않도록 등하교, 출퇴근 시간의 안전을 확보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제7호 태풍 '곤파스'가 2일 예상보다 일찍 상륙하면서 큰 피해를 준 가운데 정부의 대응이 기민하지 못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특히 교육과학기술부는 휴교와 관련된 태풍 대응 지침을 제대로 지키지 않은 것은 물론 지침의 존재 여부조차 모르고 있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교과부는 지난 2006년 태풍경보나 호우경보 발령이 예상되면 경보 전날 휴교 예비령을 내리고, 경보 당일 오전 6시30분 이전에 휴교 여부를 확정해 언론에 알린다는 '태풍ㆍ집중호우 대책'을 내놓았다.
당시 태풍 에위니아로 인한 집중호우로 학생 5명이 사망하고 교직원 1명이 실종하는 등 피해가 잇따르자 마련된 조치다.
휴교령이 제때 내려지지 않으면 일부 학생들이 악천후 속에 등하교를 하게 돼 안전사고 위험이 크기 때문이다.
하지만 교과부는 1일 태풍 예비특보가 발령되는 등 태풍 경보가 내려질 것을 충분히 예상할 수 있었음에도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서울과 경기지역 초중고교의 등교시간을 평소보다 2시간 늦춘다는 결정도 일부 학생들은 이미 등교에 나섰을 7시 전후나 돼야 알려졌다.
교과부 담당자들은 태풍경보가 예상되면 전날 휴교예비령을 내려야 한다는 지침이 있는지조차 모르고 있었다.
교육과학기술부 관계자는 "국가위기관리 기본지침에 따르면 자연재해를 관심ㆍ주의ㆍ경계ㆍ심각 등 4단계로 구분하고 '심각'일 때에만 휴교를 하도록 돼 있다"면서 "이번에는 관심 혹은 주의 단계였기 때문에 휴교는 검토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태풍경보가 예상되면 휴교예비령을 내려야 한다는 지침이 있었는지는 몰랐다"고 덧붙였다.
실제 여름이면 많게는 서 너번의 태풍이 한반도에 상륙하지만 휴교예비령은 지침이 마련된 뒤 한 번도 내려지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에는 다행히 학생들의 인명피해가 알려지지 않고 있지만 안전대책은 항상 최악의 상황을 상정하고 마련해야 하는 만큼 휴교예비령을 적극 활용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정부가 태풍의 이동 속도와 규모를 정확하게 예측하지 못해 대응이 늦었다는 지적도 나온다.
곤파스는 애초 이날 정오께 한반도에 상륙할 것이라는 예상을 깨고 오전 6시30분께 강화도에 도달해 새벽부터 수도권을 포함한 중부 지역을 강타했다.
이날 정오쯤에야 비바람이 거세질 것으로 예상하고 잠자리에 들었던 수도권 시민들은 이른 새벽부터 돌풍으로 주택 유리창이 깨지고 옥상 시설물이 날아가는 등 돌발 상황에 속수무책으로 당해야 했다.
또 출근길 철로의 단전으로 지하철이 멈춰 서고 가로수가 뽑혀 나가 차로에 나뒹굴면서 서울 시내 교통에 큰 혼잡이 발생했지만 긴급 복구가 신속히 이뤄지지 않아 시민들은 출근 대란에 시달려야 했다.
이 때문에 각 부처와 관계 기관이 모인 중앙정부의 대책기구가 급변한 태풍에 기민하게 대처하지 못한 것이 아니냐는 지적이다.
중앙재난대책본부는 기상청이 제공하는 기상정보를 토대로 대책을 세우고 있어 기상청의 예측이 늦으면 대처도 같이 느려질 수밖에 없는 한계가 있다.
기상청은 태풍이 어떻게 변할지 모르는 자연현상이어서 갑작스런 변수로 상륙 시간이 얼마나 빨라질 것인지까지 예측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기상청이 서울과 경기, 충남지역에 내려졌던 태풍주의보를 태풍경보로 바꾼 것은 강화도에 태풍이 상륙한 오전 6시35분보다 불과 30여분 빠른 오전 6시인 것으로 나타나 대처가 늦었다는 비난을 피하기 어려울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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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일 새벽 태풍 곤파스가 서해안으로 상륙하면서 강한 바람이 불어 서울시 양천구 목동 한 건물 앞에 간판들이 떨어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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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풍으로 무너진 아파트 담벼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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